내가 나와 함께 산다는 말이 어색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 '나'와 소통하고 원만한 관계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와의 거리를 줄이고 나는 나의 삶의 일부분으로 나를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나와 관계를 맺고 내가 나와 함께하는 것이 타인과의 관계를 위한 뒷받침이자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나를 먼저 살고, 나를 먼저 사랑해야 남에게 베풀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나와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닌 나라는 존재 자체를 살아야만 하는 것에 매몰되면 내 자신을 부정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를 극복하고 나면 우리는 자신의 가치관과 삶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갖추게 된다. 이러한 관점 ‘나'에 대해서 어떠한 의미로든 작용하게 된다. 그러니 이 과정을 통해 내게 주어졌던 가치를 더욱 소중히 여기고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생각과 마주하게 되면 타인은 물론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필요성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내가 어떻게 사는지를 기억하고, 내 삶을 이해하며 나를 돌보는 것의 중요성과도 맞닿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살아가야할 태도를 정의하는 것이 내 인생이고, 인생에서 나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나'를 살아갈 수 없다. 그 과정에서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물론 나만의 일일 수도 있으며,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서만 가능한 것임에도 말이다. 이 때 자신의 새로운 생각과 감정을 마주하고 더 나은 모습으로 나아가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게된다. 반대로 말하면,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보다 ‘나'에 대한 노력이 우선이며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나’와의 거리를 줄이고 먼저 ‘나'와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
여전히 혼자서는 살기 벅차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진짜 나를 위한 시간은 언제인지, 나만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인지 여전히 알지 못하며 막막해한다. 이들에게는 그저 ‘내가 원하는 것', ‘사랑할 만한 것', 그리고 ‘나'를 지켜내려는 의지를 더 깊이있게 만들어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생각들을 하며,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더욱 단단히 잡고 사는 것.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항상 갖추어야 하며 항상 인지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모든 면을 고려하였을 때 자신이 가장 소중한 존재이며 존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나'에 대한 미움이나 불평등이 아니라, 그저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한 노력, 그리고 그것이 나의 가치를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방법론으로서 말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세계가 아닌, 결국 내가 ‘나'와 함께 살아가는 세계가 변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나에게 주어진 것들이 집중할 시간임을 기억하자. 앞으로 내가 할 일은, 나를 돌보며 이 ‘삶'과 마주하는 것이다. 이 경험은 내가 ‘나’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할 뿐 아니라, ‘나'의 경험과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며 자신의 경험에 대한 존중을 자연스럽게 획득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내가 ‘나'와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일상을 살아가게 되고 우리의 삶과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들을 찾아가게 된다.
'왜 이렇게 스스로를 쉽게 돌보지 못할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빨리 알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느라 나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던 날들이다. 그런 나를 마주하는 순간은 언제나 무서웠다. 그냥 내가 어떤 존재인지 스스로 알게 되는 일이었고 그 일을 경험함으로써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삶은 자연스레 변해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과연 내 인생을 바꾸거나 나아지게 만드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우리 삶이 어느 정도 발전된 현대 사회에 살고 있지만, 지금 우리가 가진 삶과 또 다른 점은 이 새로운 세상에서의 일상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살아간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있다. 오히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타인과 상관없이 자신의 노력을 다해가며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것 같다. 이렇게 스스로를 둘러싼 사회적 평가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인정받으며 살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나는 이제 너무 많이 나를 사랑하고, 잘할 수는 있지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이룰 만큼의 노력은 할 자신이 없다. 그 자체로도 충분히 괜찮았지만, 스스로에게 얼마나 큰 자괴감과 좌절감을 주는 사람이었는지 알아버렸다. 물론 나에게 있어 나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 앞에서만, 혹은 외적 자아만을 가지고 있는 내 안의 자기불신에 대한 더 깊은 의심과 공포를 참으면서 살고 있던지도 모른다. 어쩌면 타인들의 비난이 없었다면 이런 일들이 없었을 것이다. 나와는 다르고, 진짜 자신을 알고자 하는 마음들이 더 강했다면 오히려 이 일이 더욱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역시,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저 나에게 있어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존재'였던 ‘나'와의 관계를, ‘나'와 지낸 시간들을 떠올리며 글을 적어낸다.
나는 아직도 나 자신을 믿지 못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너무 부족한 모습을 하고 있음을 안다. 그래서 다른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막상 남들이 나를 이렇게 바라보고 있지 않을 때가 많다. 그것이 나의 본모습인 것처럼 보일때까지 노력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보이면 불안해 하기보다 나는 왜 이렇게나 나랑 다를까라는 걱정이나 자학을 하곤 한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잘 모르니까. 분명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그런 느낌을 주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조금 더 나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조금씩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끔의 우울이 내게 온다 해도 나는 이 마음이 괜찮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나 스스로도 충분히 괜찮은 척할 줄 아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조금 서글픈 마음은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나의 삶을 살고 싶어도 쉽지 않다. 내 삶의 일부분으로는 언제나 나 자신을 소중히 하지도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삶 안에 작은 가치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나도 그렇지만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좋은 존재가 되기는 어렵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들은 이 마음을 잘 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면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지 못한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지 않으면 나는 또 어떤 일을 하고 있을 수 있는가'라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위로한다. 내가 얼마나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너무 쉽게 나에게 날아와 박힌다면 정말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내 안에서 답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자아를 찾고,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그저 앎에 불과하며, 결코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늘 무언가를 잃는다. 여전히 세상은 내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싶다. 그게 나에게 맞는 거고, 행복이라 믿는다. 사실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건 그런 것 같다. 그러니 내가 불안해하는 게 당연하다. 우리는 각자 각자의 삶이 있는데, 그것들은 모두 우리만큼 비슷한 것이 아니던가.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항상 불안했다. 이 불안한 감정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 답답했고, 내가 내 안의 불안을 얼마나 이해하는지 모르겠으면 나를 돌보는 방법도 알 수 없게 되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 자신의 상처로 인한 두려움과 죄책감에 휩싸여 스스로를 채근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면 언제라도 그런 상처가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에 사로잡혔다. 나도 누군가를 마음속에 쌓아두고 싶어 하지 않았고, 누가 더 나은 사람인지 따지며 스스로를 옭아매려는 일도 없었다.
그때 내 마음을 다시 한번 되돌아봤다.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다. 왜 내가 여기에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어 나 역시 많은 사람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 나의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심이 들었던 적이 많았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나의 삶에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지금껏 살아온 시간들도 참 좋았다. 그러나 지금의 삶이 나에겐 좋은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공존하고, 나를 가장 괴롭게 만드는 건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결국, 더는 나아갈 곳도 없고 앞으로 살아야 할 시간도 없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만 가득하다. 그 불안함 속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과 감정을 알아주지 않음이 두렵다. 그렇게 자꾸 스스로를 미워하고 나를 향한 '괴로움'이 찾아오는데, 왜 이런 불안을 겪는 걸까? 그저 막막하다. 이 모든 게 지금 내 마음이니까.
지금 나는 너무 많은 불안과 두려움, 고통스러운 슬픔 속에 서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질 것만 같다. 그래서 더 그랬던 것일 수 있다. 나도 모르게 그 안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이 일어날 때의 난 어떤 기분일지 생각해 봤는데, 그저 우울한 것보단 조금은 낫겠지 싶다. 조금은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자.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했다. 고통이 나를 관통하는 당시 내 마음에는 그저 "빨리 잊자"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내가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준다’는 것을 몰랐던, 그러니까 나를 위한 것이라면 그렇게라도 하겠지만 그걸 알아채기는 어려웠던,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건 나도 아는 것이었다. 더 힘들었던 것은 바로 이렇게 빨리 잊고 싶지도 않은 기억을 잊으려고 했던 것이었다. 지금은 그때처럼 또 어떤 것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내가 너무 우울감에 젖어버리면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오히려 기분이 좋아지면 좋으니까. 슬픔이 빗발칠수록, 우울감이 나를 관통할수록 내 기분은 밝아진다. 나는 잘 모를 때가 많다. 가끔은 나의 마음속까지 내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날도 있지만 나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으면 된다. 그리고 그걸 알기에 불안하고 슬프더라도 '안'으로 들어가는 건 훨씬 쉽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여전히 이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많은 것이 부족하다. 그래서 다시 나를 위한 노력과 노력이 필요하다.
우울했던 지난 날들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그래서 더 많은 것들을 내 삶과 연결해 보고 싶다.
이 글은 지금처럼 다시 나아갈 수 없었던 그때의 나 자신을 위한 글이다. 나는 그 시간 동안 무엇을 얼마나 다잡았는지. 그렇게 살아낸 나의 삶들을 되짚어 본다. 지금 보기엔 한심하더라도 기억의 문을 열고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며 그때의 울적함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그런데 이런 마음들이 사실 어떤 의미인지 알 수가 없다. 그저 조금이나마 마음을 털어놓을 때 행복하고 활력적일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군가에게는 행복을 주는 게 아닐지라도 말이다.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나의 삶의 무게가 내 마음처럼 무겁다고 느껴졌다. 나는 항상 불안하고, 우울했고, 힘들었고, 괴롭고, 답답했다. 그래서 너무 불행하지 않길 바랬다. 그러니 마음이 힘들어질 때, 가끔은 괜찮아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냥 그렇게 해야 했다. 행복해지고 싶을 때 그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많아져 버렸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받고 싶어 하는 것을 느꼈다. 그건 나도 모르게 나의 마음속 깊은 곳으로 잠식되고 있었다.
나의 몸속에 들어와 있는 감정의 무게를 느꼈다. 내 인생이 아닌 이 세상에 들어온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내가 가진 슬픔과 괴로움을 털어내기 위해 한 번쯤은 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앓으며 나는 정말 많은 것들을 빼앗기고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땐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속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나를 괴롭히는 감정이 사라질 때까지 잠시라도 머물러있을 뿐이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모든 것도 지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우울은 나를 찾아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지나간다는 건 또 그렇게 우울하다. 이 순간이 지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면서 그저 그 시기를 보냈던 나는 나태해지고 있었다. 나의 시간은 흘렀다. 오늘 밤엔 내일 아침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나의 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니 자연스럽게 나는 극단에 이르게 되었다. 나의 죽음, 나라는 존재의 끝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울감이 차오르면 나의 죽음이 곧 이 우울과 불행의 끝이리라 생각했다. 죽어서 행복해 질 수는 없다해도, 적어도 불행하진 않을 테니까. 사념들은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죽음은 머나먼 남의 일로만 생각했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위험성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불편한 일인가,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온몸이 아리고 서늘해진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래서 나는 나의 죽음에 대해 더 큰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어쩌면 죽음의 순간에 나를 향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좋을까의 문제였다. 어떤 선택을 해도 결국은 죽고야 마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삶의 과정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살아간다는 건 '죽는다는 거'를 겪어야 한다는 걸. 그저 살아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모든 일은 자신의 일이다. 다른 이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끝을 보는 것. 그래서 늘 죽음을 생각하고 살고 있던 것도 같다. 결국 죽음의 의미는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믿어진다. 어쩌면 죽는다는 것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나는 죽기 전까지,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사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이 되는 듯 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처럼, 이 사람은 죽을 때 또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은 나의 삶과 관련된 다양한 생각을 해 보게 만든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잘 죽는 것, 잘 살아가려는 생각'이다.
우울감에 약해졌던 때의 나는 작은 불행도 나에게 많은 충격이었고 나는 이 모든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스스로와의 거리가 너무 멀어질 때마다 내 안의 나를 돌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조금씩, 아주 천천히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저렇게도 힘들다는 말을 듣고 있구나." 꾹 눌러 담았던 말들이 결국 내뱉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순간들마다 마음의 힘을 다해 소리 내어 울면서 눈물을 훔쳤다. 그러다 보니 마음속에는 한 번씩 감당이 되지 않는 감정들의 폭풍이 몰아쳤고 그 날들은 어느덧 지나갔다.
나는 혼자서는 정말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지만, 나 혼자서 어떤 것을 시도해보는 것과 내 주변에 많은 이들이 함께 있어주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많이 힘쓰고도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 역시 알고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인데 이런 이유로 내 삶을 포기하며 살았을까? 지금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내가 사는 삶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불안함과 우울함이 서서히 나를 갉아먹었고, 내 마음에 다다랐을땐 공허함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내가 행복할 수는 있을까? 나는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일까? 그렇게까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에겐 모든 정답지가 있는 것이 아니고, 한 가지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그저 '나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며.
나를 둘러싼 세상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그 생각이 들 때마다, 타인들과 어울려보는 상상. 이렇게 나의 삶은 '죽음'이 아니라 '우연한 사건들'에 의한 것이 아닐까. 내 삶 속에서 일어난 일들은 마치 한 장의 사진같은 것이다. 우리는 이미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 얽혀있는 수많은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도 한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가치가 다를 뿐이다. 그것은 모두 다른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에는 그것이 옳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늘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고, 그것만이 우리가 어떤 삶을 살길 원하는지 알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 사이에 같은 생각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어느 날 갑자기 '좋다'는 감정에 사로잡힐 때가 생긴다. 마치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지는 경우 말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내심 내가 행복하지 않고 힘든 것만 보고 싶은 기분에 휩싸일 수도 있다. 불행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나의 행복을 원하고,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 쉽게 자신의 마음을 놓아버리고,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살려고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사는 건 좀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스스로를 사랑할 만한 사람이란 것을 깨닫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람들은 이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해, 타인에게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나는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면서 살아가야지 라며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그렇게 산다고 해도 사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계속해나가면 된다. 그런데 난 너무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의 존재 가치를 찾는 데에 점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요즘 들어 생각나는 것이 '삶'이었다. 삶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지만 인생에서는 그저 하나의 작은 장소다. 그리고 그곳엔 삶의 다양한 공간이 존재한다. 나에게 있어서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길은 그 어디에도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어떤 공간을 떠나게 되더라도 살아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내가 선택하고 내 마음대로 선택하는 일이다. 우리가 선택할 뿐이고 나를 찾는다는 이유로 '나를 찾자' 이만큼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에서 살고 싶다. 쉼은 늘었지만 이제 또 새로운 삶이 시작이다. 지금처럼 살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바쁘고 힘들겠지만 그냥 사는 것이다.
어떤 날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쌓아온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고, 또 다른 날엔 이 순간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사실에 무기력했다. 그리고 그 이유들을 나열하다 보니, 정말 괜찮은 사람의 모습을 찾기가 어려워져 버렸다. 좋은 사람,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지만 나는 늘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만을 되뇌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내 안에 자리 잡으면서도, 나를 둘러싼 문제들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큰 고민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닮는 것'이었고, 그게 바로 나였다. 내가 누구인지가 중요했으며, 그것이 더 나은 삶을 만드는 것이라 굳게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나의 삶이 이런 것이 되었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마침내 나는 나 자신을 알아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그래서 나를 알기 위해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했다. 내 삶을 통해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이 일이 더 이상 힘들지 만은 않았다.
결국엔 나를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만 남았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 좋아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해 궁금해질 때마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곤 했다. 그것은 아마도 나의 고민들로부터의 '발견'한 ‘방법’. 내 생각은 그것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 이 마음을 알기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나 자신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다. 그래서 좋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찾게 되었다. 어쩌면 그런 만남들이 필요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어떤 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이루지 않으면서, 나의 삶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내 삶이다. 나는 이 길을 가면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보며 나를 떠올릴 것이다. 이런 삶이야말로 진짜 삶의 모습 아닐까? 한 가지 방법을 찾고자 해도 도무지 답은 나오지 않고, 그래서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 건지 또 어느 때는 나 자신에게 묻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결국 '죽기 전까지의 모든 순간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 고뇌할지라도 이렇게 사는 편이 훨씬 낫다. 그저 자신의 미래와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기로. 한 번쯤은 내가 지금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 싶어지니까.
마지막 순간에 떠올린 행복한 추억들이 나를 지탱해 주었다. 그 기억이 나에게 삶의 방향키 역할을 한 것이다. 그렇게 다시 이 인생을 살아야지. 지금처럼 사는 게 아닌, 그리고 더 멋진 삶을 찾아가는 건 아닐지 생각하다 보면 왠지 힘이 났다.
그렇게 나는 일상을 살아갔다. 이 또한 지나고 보면 행복이란 걸 배울 수 있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런 경험들을 가지고 내 인생을 살기에는 너무 슬픈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여전히 잘 기억나지 않고, 그 감정은 아직도 나에게 다가온다. 그러다 보니 늘 아쉬움이 남는다. 오늘의 하루가 지나면 다른 날과 같은 하루를 보내겠지만 또 다음 날이 되면 다시 비슷한 감정이다. 그때, 그때는 이미 한걸음 뒤로 멀어졌다. 결국 더 일찍 알게된 것들이지만 지금 당장 어떤 것들을 할수도 없다. 그저 '다시' 존재하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과 더 이상 이 세상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는 걸 알기에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언제나 새로운 것으로 다가온다. 그러므로 모든 것들에 대해서 나는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내가 어떤 것을 더 좋아하고 무엇으로 나를 위로하는지 잘 안다. 그러나 지금 나의 경우에는 그런 것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 나도 내 인생을 좀 살 필요가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해질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안에 대한 가치관과 취향이 남기를 바라면서.
그러면서 지금은 나는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어쩌면 우리가 행복해지는 데는 다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런 기분이 든다. 내가 이런 순간들을 놓치지는 않았을까, 더 많이 즐기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감정은 늘 나만 바라보고 있구나라는 생각 말이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용기와 마음의 준비부터 하라고 말한다. '안 되는 것은 하지 마'의 마인드가 아니라 '나만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서 나를 제대로 살피고, 스스로와의 약속을 기억하고, 나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렇게 나의 삶에 들어가야 하는 것. 그 작은 방법을 꾸준히 실천해야, 어쩌면 오늘보다 나은 날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덕에 나는 이제 조금씩 행복해지고 있다. 이제는 나를 미워하지 않아도 되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도 않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즐기는 것이 훨씬 나은 인생을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런 마음조차 내 마음대로 하기는 어렵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행복과 불행의 간격을 두고 살고 있는 것 같았던 그때로 돌아가는 순간들이 있다. 그렇게 나는 내 행복을 잃을 때도 있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다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그들에게의 '감사함'이란 단어로 세상을 다 담을 수 있다는 것. 그런 느낌이다. 우리는 이제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
험난했던 나날도 이젠 모두 추억이 되어 내 삶의 양분이 되었다. 이제는 나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잘해왔던 것들 속에서도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들이다. 그렇게 살아 가려 애쓰고 싶다. 그래서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다. 어쩌면 인생이란 것이 참 힘들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들 또한 지금 내게 주어진 한 순간의 소중함이고 감사한 날들이므로 오늘도 나를 위한 삶으로 하루를 채워간다. 물론 행복하지만은 않았지만. 가끔은 그 하루하루가 정말 그리워질 때도 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지'라는 생각이 들 때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 내 마음의 평화를 찾아 준다.
내가 나와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결국엔 남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임을 깨달은 순간부터 나의 삶은 더 평온해졌다. 나는 늘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물론 그 과정에서 누군가와 함께했던 순간, 혹은 어떤 상황이든 나를 힘들게 했거나 힘들었던 적이 있었겠지만, 그런 일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 그리고 앞으로의 나에게 조금이나마 행복한 일들 위주로 살았다 생각하니까.
그런 변화는 내겐 큰 변화이며 또 어떤 변화를 불러 일으킬지 모르는 일이니 나도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받아들이자. 나는 이렇게 다시 한번 내가 선택한 삶을 살아가야지. 그렇게 스스로 위안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망이 되리라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존재들에게, 나에게 주어진 삶의 이유이고 희망을 주는 건 오로지 나의 삶뿐이니 말이다.
나는 이제 나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쩌면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삶의 즐거움을 위한 행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불행은 한 번 오는 것이 아니니까 정말 안 좋은 선택을 하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행복한 삶만을 꿈꾸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우울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항상 불안했다. 나는 이 시간을 이겨낼 수 있을까, 아니면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나, 하는 고민이 종종 마음속에 머물렀다. 그런데 며칠 전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누군가에게 말할까 봐 조금 겁이 났다. 그냥 나처럼 지내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를 위한 글을 썼다. 내 삶은 이미 괜찮으니 나의 인생을 살라는 말이다.
우리 모두가 너무 작고 작은 것들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 때문에 힘들었다. 모든 것이 싫었고, 늘 혼자였으며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지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우리는 모두 '외로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고, 외로움은 또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된다. 그래서 가끔은, 그런 나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나를 다독이면서 한 발짝 더 나아가게 해주는 것들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가진 불안과 두려움에 대해 생각하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미래들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이 바쁘고 정신이 지쳐버릴 때마다, 내게 작은 선물처럼 다가와, 스스로를 위안해주는 무언가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나는 왜 이렇게 외로워 보이는지, 내 삶을 잘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그리고 지금 하는 고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스스로 위로하는 것. 그 모든 것을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고 싶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 모두가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는다. 누군가에게 '너는 행복하다'고 말한다면 그냥 내가 그렇게 말하는 것뿐이다. 그런 말을 한다고 해도 그가 정말 어떤 사람인가는 또 모를 것이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조금 불행해져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결국 다 비슷비슷하게 사는 거니까. 지금 이 시간이 불안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그때가 그랬듯이 그렇게 잘 지내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그땐 우리 마음이 약해져서 작은 문제들도 큰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런 말뿐이다. "좋은 일은 혼자여도 좋지만 나쁜 일은 혼자가 아닐 때 좋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에서,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이렇게 다른 곳에 왔다. 내가 살았던 곳으로. 그리고 나를 돌본다.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처음의 설렘도 잠시, 이제는 편안함을 느낄 시간이 될 것이다. 한 번은 내가 우울증 환자가 되었을 때 도와준 가족들, 위로해 준 친구들, 함께 하는 직장동료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또 다시 이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하려고 노력한다. 이제 나의 삶을 온전히 느끼고 싶다. 내 삶이 얼마나 풍요로운지 알게 되었다.
나는 '함께'라는 단어가 너무나 좋다.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아름다운 단어이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삶에 함께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다. 그리고 우린 우리를 더 나은 삶의 길 위에 놓아주었다. 물론 그 길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며 이 모든 이들이 각자 나름의 결함을 갖고 있다. 내가 처음 선택한 길을 걷는다면 결코 실패하거나 넘어져도 좋다. 하지만 나의 선택이 다른 사람의 삶에도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결국 우리가 스스로에게 주어진 유일한 결정이므로, 누군가는 그저 걸어갈 뿐이다. 나는 오늘도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매일 두 발짝을 내딛는다. 오늘 하루를 살아내고 나면 내일은 또 어떤 일상을 맞이할지 모르니까. 앞으로 나아간다는 건 곧 나를 다시 새롭게 찾는 길이 아닐까. 인생에는 늘 수많은 선택지가 존재하지만, 어느 것 하나 정답도 아닌 것처럼 이 선택의 기준 또한 내가 원하는 게 아니기도 하다. 나는 오늘도 이렇게 '나의 나'를 찾기 위한 노력에 여념이 없다.